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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며시 내민 책 한 권] "킨"

기사승인 2020.03.18  17: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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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 여자, 흑인이라는 쓰리콤보 핸디캡 수호자

‘현대 미국의 흑인이 19세기 초반, 남부 노예제 농장에 떨어진다면?’
이런 소름 돋는 설정을 구현하자면 타임슬립 기법이 필요하다. 이렇게 SF소설의 틀을 갖추고 있지만, 역사적 주제 의식이 매우 깊다. 작가는 SF를 쓰려고 한 게 아니라 노예제란 어떤 것이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려고 SF 형식을 선택한 것 같다.

킨 (옥타비아 버틀러, 비채)

주인공 '다나'는 어쩌다가 과거로 빨려 들어간다. 정신 차리고 보니 150년 전 조상의 삶 속이다. 노예제가 한창인 남부 메릴랜드 주에 있다. 경악스럽다. 현대의 흑인이 19세기 초반의 노예제가 한창인 미국 남부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공포일 것이다. 이건 남자들이 종종 다시 군대 가는 악몽을 꾸는 것과 비슷하다. 꿈속에서 우리는 억울해하며 절규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전 이미 갔다 왔다고요!"

군대는 제대라도 하지. 쉬는 날이라도 있지. 이놈의 노예 생활은 평생이고 휴일도 없고 채찍이 난무한다. 주인은 가족을 떼어서 노예상에게 팔아버린다. 내 아들을 어느 날 갑자기 노예상을 통해 뉴올리언스로 보내버린다. 도망 노예는 채찍질도 모자라 양쪽 귀를 잘라 버린다. 현대 미국의 흑인들 입장에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다.

과거에 떨어진 주인공은 그녀의 조상이 무사히 태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가 과거로 끌려들어가는 건 오로지 그녀의 조상 중 농장주의 아들(루퍼스 와일린)이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이다. 그녀는 그를 어떻게든 구해야만 한다. 그가 있어야 그녀의 조상이 있고 그녀의 조상이 없다면 현대의 그녀도 없기 때문이다. 흑인 여자가 백인 남자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수호는커녕 자기 목숨 감수하기에도 벅차다. 노예, 여자, 흑인이라는 쓰리콤보 핸디캡 수호자가 백인 남자를 수호해야 하는 얄궂은 운명이라니!

남부 농장에서의 노예의 삶을 매우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노예 생활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실감 나게 보여준다. 당시 농장 운영의 현실적인 노하우, 농장주가 농장과 노예를 어떻게 관리했는지 엿볼 수 있다.

몰입도가 매우 뛰어나다. 다음 전개가 계속 궁금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마음을 졸이다 보니 책을 놓기가 쉽지 않았다. 주요 인물들이 단순하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백지 같은 아이인 루퍼스 와일린이 커가면서 자신의 아버지 톰 와일린을 점점 닮아가는 모습이 소름끼친다.

이 책을 산 이유는 옥타비아 버틀러를 찬미하는 글을 두어 번 봤기 때문이었다. 이 작가 작품을 하나라도 꼭 읽어야 할 것 같았다. 흑인 여류 SF 작가라는 것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1947년 생인 작가가 1979년에 썼으니 서른두 살 경에 쓴 소설이다. 나도 이제는 그녀를 찬미하려고 한다.

/글. 사진 독자 이덕례

금산신문 gsnews4700@naver.com

<저작권자 © 금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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