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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며시 내민 책 한 권]...네번째 이야기, 단 하나의 메시지 - 휴머니즘

기사승인 2020.05.21  14: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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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를 보세요(커트 보니것, 문학동네)

단편소설집을 출판하고 홍보하는 건 쉬운 않을 것 같다. 장편소설이 훨씬 출판과 홍보가 용이할 것 같다. 장편이 더 상품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단편영화가 장편영화보다 개성이 강하고 예술성이 높듯, 단편소설이 장편소설보다 짜임새가 있고 전개가 극적이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장편뿐만 아니라 단편소설집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장편이 줄거리와 전개 방식에 치중한다면, 단편은 이야기의 완성도와 핵심 메시지(주제)에 신경을 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도 그러하다. ‘제5도살장’으로 유명한 반전 작가인 커트는 특히 위트와 풍자가 뛰어나다.

‘예스24’와 ‘알라딘’과 같은 온라인 서점은 좋아하는 작가를 선정해 두면 신작 출간 시마다 알림을 보내주는 기능이 있다. 역시 두 곳 모두에서 문자가 왔다.

'커트 보니것의 신작 단편선 <카메라를 보세요> 출간'
얼마 뒤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샀다(예스24와 알라딘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렇게 나의 커트 컬렉션에 한 권이 더 추가되었다(나는 이미 그의 책을 스무 권 정도 가지고 있다). 이 책에는 열네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인상 깊게 읽은 소설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두 번째 소설인 <푸바(fubar)>는 대기업 홍보부에서 일하는 ‘퍼즈’의 이야기다. 그는 어쩌다 보니 파견 식으로 혼자 외롭게 오랫동안 일해 왔다. 'fubar'라는 단어는 실제로 있는 단어다(FUBAR: Fouled Up Beyond All Recognition). 해석하자면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된'이라는 뜻이다. 퍼즈는 자신이 회사에서 '푸바'된 상황이라고 여긴다. 그런 그에게 ‘프렌신’이라는 이름의 젊은 타이피스트(컴퓨터가 없던 시절엔 타이핑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나 보다)가 배정되는데......

아주 흥미롭다. 절망에 빠진 퍼즈에겐 프렌신이 한 줄기 빛이다. 그러나 퍼즈는 이미 '푸바'된 상태이기 때문에 프렌신을 다른 곳으로 보내려 한다. 놀라운 건 프렌신이다. 프렌신은 상황이란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설집에서 최고의 단편 한 개를 고르라면 이 소설을 꼽고 싶다.

“프렌신의 천사 같은 얼굴에서 그가 보게 될 것은 긍정적인 감정 중 가장 시시한 감정인 존경심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P56

<에드 루비 키 클럽>은 커트가 시도하는 흔치 않은 현재 진행형 범죄 액션물이다. 주인공 ‘하브’의 사연이 기구하다. 우연히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운명이 얄궂다. 내용 전개가 급박하고 스릴이 넘친다. ‘해리슨 포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도망자>를 보는 것 같다. 그도 이런 서스펜스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셀마를 위한 노래>는 커트가 종종 쓰는 학교 배경 소설이다. 커트는 지능지수가 쓸모없는 헛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지능지수가 높고 낮음에 쉽게 경도되지만, 사실 지능지수는 '자기충족적 예언'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쉽게 말하면 '믿는대로 이룬다'는 그 놀라운 마법! 지능지수와 성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엔젤라 더크워스'의 베스트셀러 <그릿(Grit)>이라는 책이 나오기 전에 현자인 커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쓴 것 같다. 아이들의 행동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작은 물방울>은 정말 대단한 심리극이다. 심리학을 배우다 보면 '조작적 조건형성'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자 주인공은 강박증이 있는 남자 주인공의 허점을 정확히 파악해서 이를 이용한다. 정말 놀라운 반전이었다.

<신문 배달 소년의 명예>는 살인 사건을 다루는데, 보안관 ‘찰리’는 살인 용의자보다는 신문배달 소년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더 집중한다. 정말 멋진 보안관이다. 이보다 더 멋진 멘토는 있을 수 있을까?

<우주의 왕과 여왕>은 부유한 십대 커플이 진정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렸다. 마지막 문장은 여운이 짙다. 그들은 이렇게 크게 한 걸음 성장했다.

“사흘 후, 헨리는 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앤도 헨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전에도 한 적 있는 말이지만, 조금이나마 의미가 있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P368

<설명을 잘하는 사람>도 서늘하지만, 묵직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과거를 말해야 하는 여자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해야만 하는 숙명을 맞은 남자가 만나는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이끄는 능력이 탁월하다.

출판사는 이 책을 SF 소설집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사실 이 책에서 SF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소설은 세 편(<비밀돌이>, <작고 착한 사람들>, <개미 화석>)이 전부다. 커트 보니것의 대표 소설인 <제5도살장>이 SF 소설로 분류되기 때문에 그를 SF소설가로 미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커트는 SF 소설가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에게 SF 기법은 양념일 뿐이다. 그가 SF적 요소를 쓰든 추리 소설의 요소를 쓰든 상관없이, 그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그는 휴머니즘이 무엇인지 모든 소설에서 얘기하려고 한다. 그의 소설 주제는 이렇게 단순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느낀 것은 커트의 심리학에 대한 이해이다. 그가 이론적으로 심리학을 배웠을 거라고 생각은 안 하지만, 그는 체험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심리학 지식 수준에 올라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셀마를 위한 노래>는 자기충족적 예언을 다루는 훌륭한 예이고, <작은 물방울>은 '조작적 조건 형성(모든 건 훈련 가능하다)'의 훌륭한 예다. <푸바>는 같은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원효대사의 해골 물)에 대한 훌륭한 예시다. 칼로도 사람을 죽이지만, 말로도 사람을 죽인다. 마음먹기에 따라,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는, 살거나 죽는다.

최근 몇 년 새 연달아 나온 커트 보니것의 단편선 중 이 책이 가장 좋다(‘문학동네’ 출판사에서 그의 책을 연달아 내주는 게 참 고맙다). 다채로운 이야기로 꾸며진 종합선물세트, 커트의 신작 단편소설집을 추천한다.

/독자 이덕래

금산신문 gsnews4700@naver.com

<저작권자 © 금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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