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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배우기

기사승인 2020.08.27  10: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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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모임을준비하는학생들.

“외모 평가 금지”
“채식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어요”
“큰일은 여자가”

아이들이 만든 포스터와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각자 삶에서 건져 올린 견해들이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어 고개를 끄덕여본다. 그러나 민주사회에는 늘 이견(異見)이 있게 마련이다. 한편에선, 정말 그런 것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묻고 답하는 목소리도 많다.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듣노라면, 모두 치열하다. 마치 학교 바깥의 모습을 축소해놓은 것 같다. 이러다가 아이들이 사회 문제의 해답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학교안과 밖은 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학기말로 갈수록 머리 아픈 일들이 많다. 코로나로 개학도 늦어지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지연된 학기였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데다가, 그동안의 다양한 감정선과 주장들이 얽히고 설켰다. 각자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 부딪혀 서로를 깨뜨리는 중이다. 저마다의 마음에서 부서져 나간 파편 조각들이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있다. 여기저기서 힘들다며, 공감과 이해를 바라는 목소리가 아우성처럼 요란하다. 괴롭다. 방학이 오긴 오는걸까.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들을정리하기.

하지만 이게 살아 있는 게 아닐까. 삶이란 모든 것이 멈춰져 있는 상태가 아니다.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순환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진짜 ‘우리 문제’를 마주하며, 머리 싸매고 가슴아파보는 것. 살아있는 배움이란 그런 와중에 생기는 게 아닐까. 인생의 많은 문제가 그렇듯, 정답은 없고, 질문만 많다. 하지만 삶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우리에게 배움을 주지 않았던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 학교라고 정의한다면,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안락한 시공간은 좋은 배움터라고 할 수 없다. 돌아보면, 실패한 연애와, 힘든 여행이 우리에게 큰 배움을 주지 않았던가. 삶은 불확실한 모험 그 자체다. 때문에, 삶을 살아가는 진짜 방법은 삶 속으로 뛰어들어 배워야 하는게 아닐까. 진정으로 행복을 주는 학교란 학습자로 하여금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안전하게’ 경험하도록 돕는 곳인지도 모른다.

평화위원회의 계획을 설명하는 중.

부딪히고 다투면서 우리는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갈등을 피하려 하고, 그로 인한 불편함을 빨리 털어내려 한다. 격렬한 열전(熱戰,hot war)을 피하려다, 냉전(冷戰, cold war)상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갈등 속에서 내 마음대로 빨리 빠져나오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오히려 힘들어도 갈등을 피하지 않고 비탄이 흘러가게 바라볼 수 있는 관조의 태도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이크가 돌면서, 서로의 목소리가 들려진다. 이 문제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그리고 그것이 해결된 상태는 무엇이라고 상상하는지 말한다. 현실과 이상사이의 징검다리를 놓기 위한 아이디어들도 모아본다. 뒤에서만 떠돌던 이야기가 눈 앞에서 들려진다. 서로의 생각을 하나둘 확인하며 일단 대화의 물꼬가 트이니, 조금씩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두렵기 때문에 갈등이 놓은 감정의 덫에 쉽게 사로잡힌다. 마음을 열었을 때 무력해질까 차라리 문을 닫기를 선택한다. 안전해지고 싶은 마음에서지만, 슬픈 악순환의 시작이다. 보안과 감시에는 점점 더 많은 노력이 들고, 이에 비례하여 만족감은 점점 더 떨어진다. 어차피 갈등을 피할 수 없다면, 갈등을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갈등을 통해 서로의 성숙과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내놓은 제안 중 가장 많은 표가 나온 것을 추려서 실행하기로 한다. 몇 명의 아이들이 손을 들어 실행팀에 자원하자, 더 많은 아이들이 합류한다. 그렇게 모두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어벤저스 팀이 뭉쳤다. 팀 이름을 평화위원회라고 지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후련하면서도 안전한 느낌으로 만날 수 있을까’ 평화위원회는 서로 다른 의견을 검토하며 여러 번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 그 결과 모두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준비된 대화의 장을 여러 차례 가지기로 한다.

전교생서클대화중.

모든 것이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함께 고민하며 토론하는 와중에 한 걸음씩 성숙하게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 문제를 해결해줄 초인(超人,superman)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하고 못난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때론 싸우며 새로운 미래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참 힘든 과정이다. 비루하고 남루한 일상을 마주하며, 찌질한 자신과 서로를 직면해야 한다. 서로의 공유점을 찾고, 비폭력적인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뛰는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는게 아닐까.

전교생이 다시 함께 모였다. 촛불을 켜고 앉아 모두 돌아가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말한다. 처음에는 어색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뜨거워진다. 울음과 웃음이 솟아난다. 숨길 수 없는 맨 얼굴의 소통과 공감이 오가는 중이다. 생각은 달라도 우리는 비슷한 존재였다. 저 사람도 나와 똑같이 슬픔과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눈물과 탄성을 바라보며 감동에 젖는 중이다. 삶은 그 자체로 커다란 학교다. 갈등에 대해 함께 다룰 수 있고, 성찰의 경험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학생도 교사도 모두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다가오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갈등속 나의 선택을 ‘알아차리도록’ 돕는 배움터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더 나은 민주주의와 훌륭한 시민은 실수와 오류와 사과 속에 ‘만들어져가는’것이라고 믿는다. ‘삶 속에서 배우기’, 우리가 함께 탐구해볼만한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금산신문 전문위원 유준혁

금산신문 gsnews47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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