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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된 변화

기사승인 2021.06.23  19: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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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배움과 가르침.

여름이다. 곤충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풀과 나무가 무성하다. 저마다 자라나는 계절, 금산간디학교에도 꿈들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중이다. 새로 만든 음원을 멘토샘에게 들려주며, 토론중인 H뒤에서, 마침내 완성된 텐세그리티 조형물을 들어보이며 자랑스러워하는 Y가 보인다.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다이어리를 만드는 D가 담임샘과 상담을 하는 옆에서는, 요즘 외국어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A가 스스로 정한 과제에 도전중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열심히 하기.

뭔가에 몰입하는 청춘을 바라보는 것 만큼 경이로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러면서 새삼, 배움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 모두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학교에 가지 않아도 살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던가. 다들, 학교의 부재로 생긴 ‘돌봄’의 공백으로 허둥대었지만, 정작 그로 인한 ‘배움’의 공백에 대해 아쉬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교육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사이다 같은 답변이 없는 자리, 아직은 낡은 관성들이 우리를 움직인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는 이미 시작된게 아닐까.

1인 미디어 전성시대가 눈길을 끈다. 유튜브 방송이 텔레비전을 압도하는 상황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육의 채널과 옵션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다채로운 학교와 교육프로그램이 수없이 생겨났다. 코로나시대에 확대된 온오프라인 연계 교육으로, 이런 움직임은 더 활성화될 것이다. 게다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구는 줄어도, 평생학습사회가 되면서, 배움이 필요한 연령대는 지금보다 더 넓어질 게다. 공급자들(교사, 학교)은, 갈수록 변화무쌍해질 수요에 맞추기 위해, 무척 애를 쓰겠으나.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학습자가 스스로 자기 배움을 디자인하고 찾아나설 시대가 이미 우리 곁에 성큼 와 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만들고 벽화로 표현하기.

물론 자신의 배움을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근육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게 아니다. 시작의 두려움을 넘어서고, 불확실함을 마주하며, 포기하고 싶은 욕구와도 대화하면서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다. 마침, 벽에 부딪힌 모색의 과정에 머리를 싸매는 친구들이 눈에 띈다. 동물권에 눈을 뜬 H는 요즘, 육식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재봉에 푹 빠졌던 J는 최근 옷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고, 영상에 관심이 많은 S는 슬럼프에 빠졌다. 다들 자신의 멘토들과 함께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는 중이다. 한송이 꽃이 피기위해 온 우주가 함께 하듯, 배움도 나홀로 일어나는 법은 없다. 많은 지지와 적절한 지원 그리고 새로운 연결이 꼭 필요하다.

자신과 만나는 글쓰기.

뭔가에 몰입하고 싶긴 한데, 딱히 끌리는 게 없어 고민인 L은, 여러명의 관찰에 기반한 권유를 통해, 서로 다른 몇가지 수업을 수강하고, 친구들과 동아리 활동을 해보는 중이다. 한편, 언제부턴가 스스로를 싫어해온 M은 여러 번의 대화끝에, 자기의 삶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며 조금씩 변화되어가고 있다.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는 G는, 다양한 탐색 끝에 지역아동센터와 심리상담센터를 탐방하며, 진로를 탐색해본다. 무엇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지의 길이지만, 하나씩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이미 큰 스승이다.

자기 배움의 운전대를 잡은 학습자가 여행을 떠나는데 필요한 도움은 많다. 생애 전반에 대한 상담, 다양한 프로그램 간 코디네이팅, 여러 가지 수업의 설계와 기획, 진로상담과 직업멘토링, 현장과 사람 매칭, 구체적인 학습 멘토링 등 여러 종류의 촉진활동이 함께 해야 한다. 촉진자들간 적절한 협업을 위한 협의도 수시로 필요하다. 열매가 저 혼자 맺힐리 없지 않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색깔의 현장과 성장 도우미 그리고 그들간의 네트워크가 필요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관점의 변화가 절실하다. 배움은 배우는 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정부, 학교, 교사가 아니라.

세상 어디나 학교가 될 수 있다. 배우려는 자에게는 만나는 이가 모두 스승이다. 사실 공부는 굳이 교실에 다같이 모이지 않더라도 할 수 있다. 학습자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를 모색하고, 이에 맞는 좋은 멘토를 찾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학교와 교사가 필요한 때다. 함께, 배움과 가르침의 관점을 전환해가면 좋겠다. 학습자 한명 한명에 개별 맞춤형으로 접근하고, 학습자 스스로 마음껏 자기 배움을 디자인해 볼 수 있도록 하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기 주제를 찾아 깊이 몰입해보는 과정은, 자기 발견을 위한 최적의 여건을 제공한다. 자기 고유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문제해결방식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기 개성과 탁월함으로 다른 존재와의 기여와 연결을 도모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기.

안타깝게도 낡은 관성은 여전히 강력하다. 누군가가 정해주고, 다들 똑같이 걷는 ‘표준’을 벗어나서 사고하는 건 여전히 우리에게 큰 모험으로 여겨진다. 한편으로, ‘불안’이 시대의 화두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불안하다. 다들 자신이 부족하거나 늦었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의 덫은, 우리를 낡은 인식 속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를 경쟁속으로 밀어넣게 만든다.

그러나 경쟁보다는 사랑이, 우리들 삶의 본질과 더 가깝다. 전통 문명에서, 인류는 오랫동안 상호부조와 상생의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직업세계가 급속도로 바뀌고, 인공지능의 시대도 다가온다. 거기다가, 기후위기와 코로나가 변화의 속도를 더 앞당기고 있다. 우리네 삶의 습관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뿐, 근대문명과 교육의 전성기는 오래전에 끝났다. ‘이미 시작된 변화’를 함께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R이 답을 찾은 것 같다며 환하게 웃어보인다.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청춘의 눈빛은 정말 아름답다. 잘 안된다며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그 간절한 마음에 함께하면서, 교사들도 살아있음을 느낀다. 학습자들이 맨땅에 헤딩하며 배울 수 있도록 질문하고 촉진하는 교육활동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생긴 데로 사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태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노력, 내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성찰을 놓지 않는 마음, 이런 것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교육의 성과이자 지표가 되길 바란다. 어느 대학(직장)을 가는지가 아니라.

/금산신문전문위원 유준혁

금산신문 gsnews47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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