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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달리 사람들 12

기사승인 2021.08.05  21: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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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 강과의 사이가 천험의 지형이어서 임진왜란 때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중봉 조헌 선생은 청주 싸움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뒤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막으려 금산을 지키고 있었다. 조 중봉의 막료 의병장인 영규대상은 이 월영산 아래의 덜게기(방언 : 바위 낭떠러지)가 아래는 깊은 물, 위는 바위 낭떠러지여서, 그 위에 돌들을 쌓아 놓고 기다리다 왜군이 지날 때 돌을 떨어뜨려 막자고 건의했으나 조 중봉은 양반답지 못한 싸움이라고 거절했다 한다.

장종안
전 남일우체국장

그 뒤 왜군은 이 천험의 요지를 무사통과한 것이 너무도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하는 야사가 있는데 천내리 강에서는 금산군수 권휘종과 그의 아들과 제원찰방 이극형외 수백명이 2일간의 처절한 전투 후에 전원이 전사를 하고 우여곡절 끝에 천내리 강을 건넌 왜군을 금산벌에서 맞아 싸운 조 중봉선생과 그 휘하 700여 장병들은 모두 장열한 전사를 했다. 그 때 전사한 장졸들의 무덤이 현재 금산군 금성면의 칠백의총이다. 이런 피맺힌 우리의 슬픈 역사가 제원의 금강에 있다. 천내리에 있는 비문의 시를 옮겨본다.

고려조부터 현달한 권문이여
영가로서 관향을 삼았도다.
명현이 많이 배출됨이여
우리 나라를 도왔도다.
훌륭한 권공이여
남쪽에 군수되었도다.
국운이 쇠미함이여
왜놈이 발광하였도다.
전쟁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이여
긴 뱀과 큰 돗과 같도다.
옥연이 서쪽으로 옮김이여
압록강에서 상심하도다.
누가 능히 막으리오.
공이 고을을 지키도다.
코를 방패로 격서를 씀이여
울면서 모병하도다.
광주에 있는 내 아우여
죽음로서 맹세하도다.
혼수의 저해함이여
어둡고 분한 마음 가슴이 막히도다.
죽지 않는 이 없건마는
옳게 죽는 것이 어렵도다.
창졸이 돌아옴이여
진도 제대로 못쳤도다.
천내강 언덕이여
구름과 해도 슬퍼하도다.
칼이 꺾이고 북소리도 나지 않나니
용사가 다 죽었도다.
아버지는 충에 죽고 아들은 효에 죽음이여
세신에 비해 부끄러움이 없도다.
이봉이 선후함이여
하나같이 인을 이루었도다.
정기가 공중에 서려 있음이여
영원토록 멸하지 않으리라.
나라에서 풍교를 세움이여
벼슬을 높이고 정려를 세웠도다.
현손이 이웃 군수로 오미여
유허를 깊이 그리워했도다.
제족과 도모함이여
향대부까지 미쳤도다.
풍비의 우뚝함이여
나는 시를 쓰노라.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마르도록
뒤 사람에게 소상히 보여 주도다.

숭정 후 5 우인년
숭록대부의 종정 향부사 의정부 우산성 겸 지경연춘추관 동지 성균관 의금부사 홍문관 제학 오위도총부 도총관 원임규장각 제학지경연일 강관
전주 이승보 찬

금산신문 gsnews4700@naver.com

<저작권자 © 금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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